원점으로 돌아가 미래를 설계하는 법_김디지 〈R.I.O.T. HIPHOP 精神〉, 시간의 건축과 리듬의 윤리

한 번의 굵은 킥이 공간을 정렬한다. 자정, 날짜가 넘어가는 그 경계의 순간 〈R.I.O.T. HIPHOP 精神〉은 시간을 켠다. 이 곡은 단지 ‘복귀’의 신호가 아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미래를 설계하는 한 아티스트의 건축적 선언이다.

김디지는 27년 동안 음악의 ‘틀’을 연구해 온 사람이다. 그에게 힙합은 장르가 아니라 디자인 언어에 가깝다. 클래식의 구조적 긴장, 스트리트의 리듬 윤리, 디지털 제작의 미시 공학, 그리고 전시/강연/도시 프로젝트로 확장되는 멀티센소리 경험, 그 모든 것이 ‘사운드’라는 하나의 평면 위에 투사된다. 사치 갤러리에서 전량 매진으로 끝난 NFT 전시가 보여준 것은 음악이 이미 소리의 테두리를 넘어 공간·시각·소유의 차원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밀란 패션위크의 특강에서 그는 음악을 몸과 공간의 감각 체제로 설명했다. 그 연장선 위에서 이번 싱글은 ‘정신(精神)’이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체를 소리로 재현한다.

현악과 808 사이: 폴리포니와 폴리리듬의 교차

곡의 표면은 아름답다. 바로크풍의 현악 질감이 길을 열면 808의 하강과 상승이 정렬을 바꾼다. 그러나 진짜 드라마는 심층부에 있다. 현악은 대위(對位, Counterpoint)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랩은 폴리리듬의 미세한 당김으로 드럼의 격자에 균열을 낸다. ‘질서’와 ‘에너지’가 서로를 침식하며 구축하는 이 과정에서 음악은 박(拍)이 아니라 골격이 된다. 우리는 멜로디를 듣는 동시에 설계도를 훑어본다.

여기에 IGNITO의 목소리가 들어오면 서사는 다른 층위로 확장된다. 낮게 깔리는 보이스의 질량과 날 선 플로우의 각도는 곡이 품은 이중 구조(고전/현대)를 인간의 호흡으로 번역한다. 결국 〈R.I.O.T. HIPHOP 精神〉은 ‘어떻게 말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세우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곡은 ‘말’ 이전의 ‘뼈대’를, ‘감상’ 이전의 ‘감각 장치’를 묻는다.

정육면체를 던지다: 우연과 설계의 합, 도시와 스튜디오의 동시성

우리가 앞서 실험했던 ‘정육면체를 던지다’라는 멀티센소리 프로젝트를 떠올려보자. 화가·수학자·뮤지션이 한 작품을 서로 다른 언어로 해석하고 그 결을 다시 하나의 경험으로 엮어내던 실험. 그때의 정육면체는 확률과 구조의 은유였다. 이번 싱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탈리아·말레이시아·한국—서로 다른 시간대, 다른 공기와 건축의 도시들에서 채집된 소리들이 동시성을 획득한다. 각 스튜디오의 잔향, 거리의 소음, 밤의 질감까지도 레이어로 포집되어 ‘지리’가 ‘질감’으로, ‘이동’이 ‘리듬’으로 변환된다. 우연은 자료가 되고 자료는 설계가 된다. 정육면체의 각 면이 굴러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지만 면의 수는 언제나 여섯이라는 사실—그 확실성이 바로 이번 트랙의 프레임이다.

RIOTA: 이름의 기원, 정신의 귀환

“27년 전 ‘힙합 精神’에서 출발한 제 이름 RIOTA.” 아티스트의 고백은 간결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지속의 윤리가 있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기술을 신봉하지 않으며 대신 정신을 업데이트한다. 〈R.I.O.T. HIPHOP 精神〉은 그래서 복고가 아니고 향수가 아니다. 과거의 문법을 미래의 엔진으로 재배치하는 브랜딩 차원의 서술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공유를 전제한다. 이 곡은 표적 청자가 정해진 메시지가 아니라 세대를 가로질러 “자, 이제 네 언어로 번역해봐”라고 말을 거는 오픈 소스에 가깝다. 원점으로의 회귀는 결국 다음 세대를 위한 출구 설계다. 김디지는 귀환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만든다. 자정은 끝이 아니라 켜짐이다.

트랙 정보

• 타이틀: 〈R.I.O.T. HIPHOP 精神〉

• 아티스트: 김디지 (DEEGIE)

• 피처링: IGNITO

• 선공개 싱글: 2025년 8월 29일(금) 00:00 (KST) 주요 음원 플랫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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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식 앨범: 2025년 9월 8일(월) 발매, 총 6곡 수록, 주요 음원 플랫폼 공개